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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사랑하죠, 오늘도.

by ✍︎〠✷ 2018.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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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당신과 다른 감상일 수 있습니다. 필력이 부족해 생각을 생각대로 표현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이 소설은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꿈처럼 만든다. 

무채색에 단조로운, 그저 살아가는 생활을 오히려 꿈처럼 만들고, 소설 속의 삶을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말이다. 내가 필용이 되어 가슴이 저미고 슬프도록 마주한 현실을 보여주며.


나는 양희처럼 갑자기 사랑이 없다가도, 필용이 되어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건지 되묻는다.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다. 필용이 되어 슬퍼하면서도, 양희가 되어 담담하게 누군가를 비웃지도, 누구 앞에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수 없다. 생각처럼 쉽게 일순간에 없음이 되지가 않기 때문에. 그러다가도 나는 느껴오던 사랑이 일순간 '있지 않음'을 자부한다. 내가 오래 전에 잊은, 최근에 잊어버린 '있지 않음'들에게 그때는 그러했었다고 진심을 다해 그러했었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아무도 안 웃었어, 너나 웃지 누가 웃어?"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나를 관통했다. 그리고 필용의 마음에 깊게 번진다. 

"나무는 '크크크'하고 웃지 않는다"는 말처럼, 연극처럼.

양희가 설명하지 않아도, 대사 하나 없이 필용은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사라지는 방식을 취해야만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어떤 순간과 감정, 관계가 삶에 있다. 이같은 깨달음은 그 어떤 것이 사라진 이후에나 찾아온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이미 '너무' 늦은 사람의 마음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슬퍼하며, 원망하며, 또 그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며 생장한다. 내가 필용인 것을 견디며, 내가 양희인 것을 살아가는 것 처럼.

"아주 없음"이 아닌 "있지 않음"의 상태로.


"사랑하죠, 오늘도." 내일은? 나도 몰라요. 사실 여러번의 계절이 지나가면서 나를 잃은 것은 아닌가 가끔 생각한다. 예전의 삶은 내가 그 생 안에서 살아 바쁘게 움직이며 돌린 것이라면, 지금의 삶은 그 삶의 외부에서 직면한 큰 덩어리가 아닐까 싶다. 사랑 앞에서, 삶 앞에서 자기의 방식대로 진지하게 임하는 필용과 양희를 보며 내가 대했던 수많은 사랑과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의 내가 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나도 다시 한번 "득의양양하게 생장"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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